난중일기에 기록된 무우 파종 시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둔전에서 무를 파종했다는 이야기가 2번 나옵니다. 첫번째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수군 승리하던 시기로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을때인 갑오년(1594년) 양력 7월 24일이고, 두번째는 모함과 질투로 옥살이하고 풀려나 권율장군 아래서 백의종군하고 있던 정유년(1997년) 8월7일에 파종을 지시했다고 나옵니다. 백의종군 하던 시절에도 둔전에 무우농사 챙기시던 장군님의 세심함이 돋보입니다.

파종 날짜를 살펴보면, 첫번째 기사는 양력 7월24일이고, 두번째 기사의 8월6일 입추에 침종했다고 합니다. 침종은 무우씨를 물에 불려 발아율을 높이는 방법인데 보통 다음날 파종하기 때문에 그날 물에 담궜다는 뜻인지 아니면 전날 불린것을 그날 파종했다는 뜻인지 정확치 않지만 어느쪽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요즘보다 좀 많이 일찍 시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몇년간 텃밭에서 무농약 재배를 해보니 저녁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8월 하순에 심어도 무더운 날씨에 벌레가 생겨서 망하기 쉽상인데, 7월말이나 8월초라면 더더욱 힘들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그렇게 일찍 심을수 있는 무우라면 지금 재배하는 것들 보다는 병충해에 강한 품종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무우 재배의 목적은 아마도 땅속에 움저장해 두고 겨우내 먹거나, 김장이나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씨앗은 당연히 재래종일텐데 그 당시 어떤것이 있었는지 자료조사도 해보고, 상상력을 발휘해보아야 겠습니다. 아마도 재래종인 진주대평무 비슷한 것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갑오년 6월 (1594년 음력 6월)
6월 5일 (임자) 맑다. [양력 7월 22일]
충청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사도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가 함께 와서 활을 쏘았다. 밤 열 시쯤에 급창(관청의 심부름하는 종) 김산(金山)과 그 처자 등 세 명이 유행병으로 죽었다. 세 해나 눈앞에 두고 미덥게 부리던 사람인데, 하루 저녁에 죽어가다니, 참으로 슬프다. 무우밭을 갈았다. 송희립․낙안군수․흥양현감․보성군수가 군량을 독촉할 일로 나갔다. (해석 -> 파종 2-3일전에 밭갈기, 퇴비 넣기?)

6월 6일 (계축) 맑다. [양력 7월 23일]
충청수사․여도만호와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우후가 와서 봤다. 소나기가 왔다.

6월 7일 (갑인) 맑다. [양력 7월 24일]
충청수사․첨사 배경남(裵慶男)이 와서 이야기했다. 남해군관과 색리 등의 죄를 처벌했다. 송덕일(宋德馹)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임금의 분부(有旨)가 들어온다고 했다. 오늘 무우씨 두 되 다섯 홉을 부침했다.

원문: 初五日壬子。晴。忠淸水使,蛇渡,呂島,鹿島並來射帿。○夜二更。及唱金山及妻子並三名。癘疫死。三年眼前信使者一夕死去。可愕。○是日。耕菁(경청)。○宋希立以樂安,興陽,寶城軍粮督促事。出去。


원문: 初七日甲寅。晴。忠淸水使及裵僉使來話。○决南海軍官及色吏等罪。○宋德馹還來言。有旨入來云。 ○是日。種菁(종청)




두번째, 정유년 6월 (1597년 음력 6월)
6월 24일 (계미) 이 날은 입추이다. [양력 8월 6일]
새벽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골짜기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 침에 수사 권언경(權彦卿)의 종 세공(世功)․종 감손(甘孫)이 와 서 무우밭에 관한 일을 아뢰었다. 무우밭을 갈고 씨부침하는 일의 감독관으로 이원룡(李元龍)․이희남(李喜男)․정상명(鄭翔 溟)․문임수(文林守) 등을 정하여 보냈다. 생원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 합천군수가 조언형(曺彦亨)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더위가 찌는 듯했다. (해석 -> 파종 1-2일전에 밭갈기, 퇴비 넣기?)

6월 25일 (갑신) 맑다. [양력 8월 7일]
다시 무우씨를 부침하도록 시켰다. 아침을 먹기 전에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와서 보고는 해전에 관한 일을 많이 말하고, 또 원수가 오늘 내일 진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군사를 토론 하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저녁에 종 경(京)이 한 산도에서 돌아왔다.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들었다. 놀라워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놀랍고도 애석 하며 놀라와 탄식했다. 한 놈의 적도 잡지 못하고 먼저 두 장 수를 잃었으니 통탄하고 한탄할 일이다. 거제도 사람을 보내어 미역을 실어왔다.

7월 18일 (정유) 맑다. [양력 8월 30일]
새벽에 이덕필(李德弼)․변홍달(卞弘達)이 전하여 말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몰래 기습공격을 받아 통제사 원균(元 均)․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충청수사(최호) 및 여러 장수 와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고, 수군이 대패했다.”고 했다. 듣자하니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원수(권율)가 와서 말하되, “일이 이 지경으로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오전 열 시가 되어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직접 연해안 지방으로 가서 보고 듣고 난 뒤에 이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말하니, 원수가 기뻐하여 마지 않았다. 나는 송대립(宋大立)․류황(柳滉)․윤선각(尹先覺)․ 방응원(方應元)․ 현응진(玄應辰)․ 림영립(林英立)․ 이원룡(李元龍)․ 이희남(李喜男)․ 홍우공(洪禹功)과 함께 길을 떠나 삼가현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새로 부임하여 나를 기다렸다. 한치겸(韓致謙) 도 왔다. 오랫동안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