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 정찬주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깊이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천강에 비친 달'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지은 악장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에서 나온듯하다.

세종의 한글창제에 관한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글 창제와 이를 이용한 당시 번역과 창작이 만들어졌던 과정의 갈등과 인과관계를 재미있게 풀이하고 있다. 소설에 나온것이 100% 사실과 부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용들이 흥미롭다.

사실 세종(1397년 5월 7일 ~ 1450년 3월 30일 17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임금)이 혼자서 무에서 한글을 창제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세종의 한글 창제와 보급에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는 신미대사, 정의공주, 박연이 언급된다.

신미대사는 범자(산스크리트어 표기문자)를 잘 알고 있어서 한글의 원리와 자모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을 법하다. 게다가 2014년에 공개된 '원각선종석보'는 신미대사가 정통 3년에 지었다하니 훈민정음 반포보다 8년이 앞서므로 신미의 큰 기여를 짐작케한다. 실록에는 문종1년 (1450년 7월 6일) 문종이 신미대사에게 '선교종 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 혜각존자(慧覺尊者)'의 26자에 이르는 긴 법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는아마도 한글창제에 기여한 점과 이를 이용한 불교경전의 한글 번역에 기여 했기 때문으로보인다.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년 ~ 1477년 2월 11일)는 조선의 공주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차녀이며, 문종의 누이동생이자 세조의 누나이다. 1428년(세종 10) 정의공주로 책봉되어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연창위(延昌尉) 죽성군(竹城君) 안맹담(安孟聃)에게 시집갔다. 정의공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은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출처: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


난계 박연(1378~1458)도 큰 기여를 했다는 설이 있는데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어째거나 세종 자신도 천재이고 주위에 뛰어난 사람들을 두어 천재성을 발휘하여 훌륭한 문화유산을 만들게 했으니 성군이라 하겠다.


참고

장찬주작가 인터뷰(주간동아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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