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들여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백제시대 유물에서 면직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목화가 재배되기 전, 삼국시대 고대인들은 겨울에 무슨 옷을 입었을까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번 발견은 고대에도 면직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고려시대 문익점이 목화를 재배했을때, 씨앗을 제거하는 '씨아'와 실을 감는 '물레'와 같은 면직 기술 자체도 새로이 들여와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씨아 없이 면직을 했다는 것인데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처럼 상식과 충돌하는 이런 '놀라운' 발견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첫째, 이것은 면직물이 아니라 유사한 '다른 식물의 섬유'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사시나무 솜털이라든지... 둘째, 이것은 중국에서 제작된 면직물을 수입한 것일지 모른다. 세째, 진짜 국내에서 생산된 면직물이다. 이런 세가지 가설이 가능해 보인다. 섬유가 어떤 식물의 것인지 더 정확한 조사가 되었으면 한다. 지난번 고추가 임진왜란 이전에 있었다는 성급한 엉터리 발표(고추의 기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걸 연구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에 입었던 옷이 삼베나 비단 이외의 재료가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으면 좋겠다.
---- 인용전문 ----
국립부여박물관, 문익점보다 800년 빠른 백제의 면직물 발견 (뉴스타운기사)
보존상태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 커
양승용 기자, kromj@newstown.co.kr

▲ '능산리사지 출토 면직물'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국내 최고의 면직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폭 2cm, 길이 약12cm 가량의 이 면직물은 1999년 능산리사지 6차 발굴조사 때 발견된 이후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백제 중흥을 꿈꾸다 -능산리사지’ 특별전에 처음 공개되었다.
면직물의 재료가 되는 목화는 역사적으로 고려 말인 14세기 후반 경에 문익점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됐다. 값비싼 비단에 비해 싸고 따뜻한 면직물의 보급은 당시로서는 섬유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정색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어 있는 것으로 그 시기는 고려 말 공민왕 때이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사지 서쪽 돌다리의 백제 유적층에서 출토된 면직물은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창왕명사리감’의 제작년도가 서기567년임을 감안할 때, 고려의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처음으로 갖고 들어왔다는 14세기에 비해 무려 800년이나 앞서는 국내 최고의 면직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직물은 고대의 일반적인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로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으며, 이 직물을 통해 백제인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 '면직물 조직모형도'
한편 국내에서 출토된 고직물(古織物)의 경우,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출토의 직물처럼 잘 남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극히 단편적 자료들이며 금속기 등 다른 유물에 고착되거나 경화된 상태로 남아있어 직물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유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통한 종단면 관찰 결과, 면섬유의 특징이 뚜렷이 관찰되어 식물성 셀룰로오즈 섬유로 짜여진 ‘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 유물은 목화에서 실을 뽑아 독특한 방법으로 직조한 고대 직물로써 당시의 제직기술과 복식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백제 면직물에 대한 조사 ․ 분석은 국립부여박물관 보존과학팀과, MOU기관인 한국전통문화학교(심연옥, 정용재 교수)와 공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금년 10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인터넷신문 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2010-07-15 오전 9:57:44
‘문익점’보다 800년 앞선 백제 면직물 발견 (서울신문기사)
능산리 절터 출토 유물서 독창적 직조… 검증 남아
고려 말 때인 1363년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면직의 역사를 800년이나 앞당길 수 있는 유물이 확인됐다. 부여 능산리 절터 유물을 전시 중인 국립부여박물관은 최근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999년 능산리 절터 제6차 조사에서 수습한 폭 2cm, 길이 약 12cm의 직물이 면직물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 문익점보다 800년이나 빠른 국내 最古 면직물로 드러난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백제시대 직물. 국립부여박물관이 한국전통문화학교와 공동 분석을 실시한 결과 목화에서 뽑을 실로 짠 면직임이 밝혀졌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이 직물은 능산리 절터 서쪽 돌다리 백제 유적 층에서 출토된 대나무 조각 안에 들어 있던 것이다. 함께 출토된 ‘창왕명 사리감’의 제작연도가 567년임을 감안할 때 국내 최고(最古) 면직물이라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실물을 통해 확인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정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은 직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제작한 것으로 추정됐다.
박물관은 한국전통문화학교 심연옥·정용재 교수팀과 함께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종단 면을 관찰한 결과, 면 섬유의 특징이 뚜렷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즉,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직조됐다는 것이다. 특히 고대의 일반적인 직물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 형태는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어 백제인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삼국사기, 양서(梁書) 등 고문서에 ‘백첩포(白疊布)’라는 야생 면이 자생한다는 기록을 근거로 문익점 이전에 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생산됐을 것이란 주장은 학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문화재위원인 박윤미 경상대 강사(복식공예·직물)는 “문익점이 갖고 온 목화씨는 방적하기 편한 종류로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고, 그 이전 삼국시대 때 소량 재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제 면직물은 이런 가능성을 실물로 보여주는 첫 유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국내에서 출토된 고직물은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출토의 직물처럼 잘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극히 단편적인 자료로 전한다. 금속기 등 다른 유물에 고착되거나 경화된 상태로 남아 있어 직물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유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도 크다. 조사성과는 오는 10월 국립부여박물관이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정식 보고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0-07-16 2면
그러나, 고려시대 문익점이 목화를 재배했을때, 씨앗을 제거하는 '씨아'와 실을 감는 '물레'와 같은 면직 기술 자체도 새로이 들여와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씨아 없이 면직을 했다는 것인데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처럼 상식과 충돌하는 이런 '놀라운' 발견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첫째, 이것은 면직물이 아니라 유사한 '다른 식물의 섬유'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사시나무 솜털이라든지... 둘째, 이것은 중국에서 제작된 면직물을 수입한 것일지 모른다. 세째, 진짜 국내에서 생산된 면직물이다. 이런 세가지 가설이 가능해 보인다. 섬유가 어떤 식물의 것인지 더 정확한 조사가 되었으면 한다. 지난번 고추가 임진왜란 이전에 있었다는 성급한 엉터리 발표(고추의 기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걸 연구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에 입었던 옷이 삼베나 비단 이외의 재료가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으면 좋겠다.
---- 인용전문 ----
국립부여박물관, 문익점보다 800년 빠른 백제의 면직물 발견 (뉴스타운기사)
보존상태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 커
양승용 기자, kromj@newstown.co.kr

▲ '능산리사지 출토 면직물'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국내 최고의 면직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폭 2cm, 길이 약12cm 가량의 이 면직물은 1999년 능산리사지 6차 발굴조사 때 발견된 이후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백제 중흥을 꿈꾸다 -능산리사지’ 특별전에 처음 공개되었다.
면직물의 재료가 되는 목화는 역사적으로 고려 말인 14세기 후반 경에 문익점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됐다. 값비싼 비단에 비해 싸고 따뜻한 면직물의 보급은 당시로서는 섬유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정색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어 있는 것으로 그 시기는 고려 말 공민왕 때이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사지 서쪽 돌다리의 백제 유적층에서 출토된 면직물은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창왕명사리감’의 제작년도가 서기567년임을 감안할 때, 고려의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처음으로 갖고 들어왔다는 14세기에 비해 무려 800년이나 앞서는 국내 최고의 면직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직물은 고대의 일반적인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로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으며, 이 직물을 통해 백제인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 '면직물 조직모형도'
한편 국내에서 출토된 고직물(古織物)의 경우,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출토의 직물처럼 잘 남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극히 단편적 자료들이며 금속기 등 다른 유물에 고착되거나 경화된 상태로 남아있어 직물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유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통한 종단면 관찰 결과, 면섬유의 특징이 뚜렷이 관찰되어 식물성 셀룰로오즈 섬유로 짜여진 ‘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 유물은 목화에서 실을 뽑아 독특한 방법으로 직조한 고대 직물로써 당시의 제직기술과 복식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백제 면직물에 대한 조사 ․ 분석은 국립부여박물관 보존과학팀과, MOU기관인 한국전통문화학교(심연옥, 정용재 교수)와 공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금년 10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인터넷신문 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2010-07-15 오전 9:57:44
‘문익점’보다 800년 앞선 백제 면직물 발견 (서울신문기사)
능산리 절터 출토 유물서 독창적 직조… 검증 남아
고려 말 때인 1363년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면직의 역사를 800년이나 앞당길 수 있는 유물이 확인됐다. 부여 능산리 절터 유물을 전시 중인 국립부여박물관은 최근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999년 능산리 절터 제6차 조사에서 수습한 폭 2cm, 길이 약 12cm의 직물이 면직물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 문익점보다 800년이나 빠른 국내 最古 면직물로 드러난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백제시대 직물. 국립부여박물관이 한국전통문화학교와 공동 분석을 실시한 결과 목화에서 뽑을 실로 짠 면직임이 밝혀졌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이 직물은 능산리 절터 서쪽 돌다리 백제 유적 층에서 출토된 대나무 조각 안에 들어 있던 것이다. 함께 출토된 ‘창왕명 사리감’의 제작연도가 567년임을 감안할 때 국내 최고(最古) 면직물이라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실물을 통해 확인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정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은 직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제작한 것으로 추정됐다.
박물관은 한국전통문화학교 심연옥·정용재 교수팀과 함께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종단 면을 관찰한 결과, 면 섬유의 특징이 뚜렷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즉,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직조됐다는 것이다. 특히 고대의 일반적인 직물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 형태는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어 백제인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삼국사기, 양서(梁書) 등 고문서에 ‘백첩포(白疊布)’라는 야생 면이 자생한다는 기록을 근거로 문익점 이전에 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생산됐을 것이란 주장은 학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문화재위원인 박윤미 경상대 강사(복식공예·직물)는 “문익점이 갖고 온 목화씨는 방적하기 편한 종류로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고, 그 이전 삼국시대 때 소량 재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제 면직물은 이런 가능성을 실물로 보여주는 첫 유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국내에서 출토된 고직물은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출토의 직물처럼 잘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극히 단편적인 자료로 전한다. 금속기 등 다른 유물에 고착되거나 경화된 상태로 남아 있어 직물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유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섬유와 실의 상태, 직물의 조직 등이 잘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도 크다. 조사성과는 오는 10월 국립부여박물관이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정식 보고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0-07-16 2면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