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의림지 다녀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저수지. 삼한 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라 하는데 후대에 여러번 개축되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소나무가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데 구조가 특이했습니다. 원래 물길은 저수지 서쪽으로 흐르는데 무넘이 아래는 엄청나게 깊은 계곡이 있는데, 홍류동(紅柳洞)의 협곡이라고 합니다. 이 계곡을 막아 물길을 틀어 아래쪽 넓은 들에 물을 대는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은 언제부터 이렇게 물길을 돌리는 거대한 수리시설을 했는가 하는점입니다.


상류쪽에서 내려다본 의림지, 오른쪽이 원래 물길인데 왼쪽의 넓은 들에 물을 대도록 물길을 돌린것 같다.
출처: 제천 의림지 건축시기 학계 논란


하늘색 화살표가 원래 물길을 나타낸다. 물이 깊은 계곡으로 흘러가 버린다.


큰지도를 보니 제천 시내를 포함한 엄청난 들판이 의림지의 몽리면적이다. 제천시내도 의림지의 덕으로 만들어 졌구나.
출처: 네이버지도



조선시대 후기 기야 이방운(1761~1815?)의 서화첩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에 나오는 의림지 그림. 8곳의 경승지를 과장되게 단순화 시켜서 그린 그림이라서 1800년경의 저수지 구조를 살펴보기도 어렵다. ㅠ ㅠ
출처: 국민대학교

의림지 (義林池)
충청북도 제천시(堤川市) 청전동(靑田洞) 모산(茅山)에 있는 저수지. 둘레 약 2㎞, 면적 15만 1470㎡, 저수량 661만 1891㎥, 수심 8∼13m. 제천은 고구려시대부터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 등으로 불린 것으로 보아 의림지의 역사는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흙·모래·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져서 제방 외면이 단(段)을 이루도록 하고 여기에 석재를 보강하여 이중의 사다리꼴을 이루도록 하였다. 출수구는 본래의 자리가 원토인 석비레층으로 그 위에 축조되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제방은 우륵(于勒)이 처음 쌓았고 700년 뒤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고 전해지지만, 문헌의 기록으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수축하고 1457년(세조 3)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1972년 장마로 무너진 것을 73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충청도의 별칭인 호서(湖西)란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특산물로 빙어가 유명하다.
출처: 네이트지식


제천의림지와제림(堤川義林池와堤林)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와 그 제방 위의 제림(堤林) 그리고 주변의 정자 및 누각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역사적 경승지이다.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리시설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 제천현지도(堤川縣地圖), 청구도(靑邱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자세히 나타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조선후기 산수화가 이방운(李昉運)이 그린 서화첩「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에 나오는 명승지 8곳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단양사군(丹陽四郡 : 청풍, 영춘, 단양, 제천) 지역의 대표적 명소로 알려져 있다.
출처: 명승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