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기적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by 새벽안개

제가 소개하는 도마복음을 이단의 문서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것 같아서, 지난번 예수의 DNA에 이어서 제가 생각하는 과학적 성경읽기에 다시 도전합니다. 요한11장에 나사로가 죽은지 4일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믿기 어려운 기록이 있습니다. 다시 이 사건의 역사적 진실성이 오늘의 도전문제 입니다.

먼저 요한복음 11장 17절, 38-44절 개정개역 내용을 보겠습니다.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시간적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일반적인 인간의 죽음과 시체의 부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죽음은 [심장사], [뇌사], [세포사]가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보통 심장이 멈추면 5분후에는 뇌신경이 죽기 시작하고, 간세포는 1시간, 골격근은 수시간이 경과하면 세포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세포사는 모든 세포가 다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포사 라는 것은 세포 안밖의 이온 비평형이 망가지고, 세포에 존재하는 핵산분해효소에 의해 DNA가 조각조각 나고,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에 대한 분해효소에 의해 세포가 망가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비가역적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죽었던 사람은 세포가 망가지면 다시 살아날수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 심장이 오분이상 멈추어도 뇌세포가 죽어서 식물인간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죽은지 4일 지난 나사로를 살려 냈다고 합니다. 게다가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로 보아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추측할수 있습니다. 인간의 시체가 부패하는 경우에는, 미생물이 증식하여 인간의 세포를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더더욱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죽은지 4일지난 시체를 살려 냈다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과율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습니다. 장황한 이야기를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DNA가 조각나서 다시 정상적으로 복구가 불가능하다는데 있습니다.

저는 이런 진실성이 없어 보이는 기사에 속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깨어 있으라고 했던것은 거짓말에 속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당시 이런 거짓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으면 도마복음 11장에 있는 이런 말씀을 하셨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이 하늘은 사라질 것이요, 또 그 위에 있는 것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살지 못하고, 산 자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도마 11장)
Jesus said: This heaven shall pass away, and that which above it shallpass away; and they that are dead are not alive and they that liveshall not die.(도마 11장)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현대인들은 4복음서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사화와 부활사건을 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빠집니다. 이성적인 생각을 버릴것인가 성경 기록에 대한 믿음을 포기할 것인가. 하지만 도마복음에서는 부활과 기적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합니다. 이런 태도가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과 예수의 가르침을 조화시키려는 사름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덧글

  • shaind 2009/04/10 16:20 # 답글

    도마복음의 내용을 근거로 정전 복음서의 내용을 말 그대로의 거짓이라고 단정하시는 것을 보니 일단 이단이 확실하시군요. ;)

    사실 요한복음서의 저 장면은 문제가 많은 장면입니다. 11장의 첫부분과 12장의 첫부분을 비교해보면 좀 웃기는 점을 하나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11장 첫머리에는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라고 해놓고는,
    12장 첫머리에는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하면서 마리아가 향유와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아준 사건을 설명하고 있죠. 그래서 두 장은 서술시의 관점에서는 서로 시간적으로 모순입니다. (물론 전체 문맥으로 보면 라자로의 부활이 향유 사건 뒤에 일어난 일이 맞는 것 같지만...)

    12장의 향유 사건은 다른 정전 복음서에도 서술된 반면 11장의 라자로의 부활은 없죠. 그래서 11장 처음부분의 모순을 편집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라자로의 부활에도 의심을 눈초리를 줄 수밖에요......

    사실 요한복음에는 토마스를 낮추어보는 듯한 장면도 등장하는데, 예컨대 20장에서 토마스가 예수 부활을 의심하다가 개쪽을 당하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죠. 이런 것과 저런 '신학적'인 불일치를 연결짓는 건 너무 비약이려나요.
  • 새벽안개 2009/04/10 16:41 #

    아아... shaind 님에게도 저는 이단이 되어 버렸군요.ㅠ ㅠ

    사실 도마에 대한 가장 상세한 설명이 요한복음에 나오고 있죠. 그런데 같은 문제를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예수 부활을 의심하다고 망신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도마의 의심을 통한 진리 추구가 맹목적인 믿음보다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새벽안개 2009/04/10 16:54 #

    라자로 부활 사건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군요. 그렇다면 나중에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음번 편집 비평글 쓸때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speros 2009/04/17 23:25 # 답글

    "죽은 자들은 살지 못하고, 산 자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토마 복음서 말대로라면 부활이 없는 대신 죽음도 없지요. 차라리 4대 복음서가 나아요. 그리고 부활은 당시 바리사이들에게서도 흔한 사고였습니다. 철저한 고전주의(?)였던 사두가이들은 거부했지만.
  • 새벽안개 2009/04/18 08:14 #

    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일장 일단은 있네요.
  • Esperos 2009/04/17 23:28 # 답글

    4대복음서의 편집사 추적과 고등비평에 맞먹는 작업이 토마 복음서에 가해져야 합니다. 일단 그게 안 됐어요. 토마 복음서에 있는 영지주의적 색체를 없애고, 편집사적 요소를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토마 복음서를 로기온 자료로 쓸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에만 하더라도 그런 자료가 전혀 없잖습니까?
  • 새벽안개 2009/04/18 08:16 #

    말꺼낸 Esperos 님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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