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두더지

두더지 (학명Mogera robusta)

농사짓는 사람에게 두더지는 골칫거리입니다. 새로 심은 작물 밑으로 구멍을 뚫어 뿌리가 들뜨게 하여 말라죽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두더지는 고구마나 땅콩 같은 작물을 직접 먹지 않을뿐 아니라 해충(곤충, 딱정벌레의 유충인 굼벵이, 애벌레, 개미)를 잡아 먹어서 유익하다. 흙을 파헤치고 구멍을 뚷는것도 작물의 뿌리에 피해를 주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흙의 통기성을 좋게하고 부드럽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물의 뿌리를 상하지 않으면서 흙을 부드럽게 해주는 땅강아지와 지렁이를 잡아먹는 것은 아쉬운 측면입니다. 전체적으로 볼때 두더지는 텃밭의 상위 포식자로써 생태계의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이처럼 두더지의 긍정적인 역할을 고려해서 웬만하면 죽이지 않고 공존하려 합니다.

------------ 인용자료 -----------------
두더지의 먹이습성, 피해확인 두더지 / 유해야생동물관리 2013.08.15. 11:24
http://blog.naver.com/ap2653/40195197060

먹이 습성

두더지의 치아구조에서 섭식 특성과 일반적인 행동양식을 알아볼 수있다. 몇 가지 측면에서 두더지는 설치류라기 보다는 육식동물이나 살코기를 먹는 포유동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두더지의 주식은 주로 곤충, 애벌레들 그리고 흙속에서 발견하는 벌레들이다.

두더지가 먹는 음식물의 종류 (100마리의 위 내용물을 조사한 결과)
음식물종류 발견된 개체
흰색 애벌레 64
지렁이 49
딱정벌레 67
딱정벌레 유충 44
기타 유충 25
지네 25
개미 19
말벌 7
파리 2
식물섬유,뿌리 2
곡물의 껍질 43
귀뚜라미 10
곤충 파편 31
번데기 껍질 21
고치 10
거미 23
메뚜기 2
벌레 3
뿌리나 곡물껍질 3
모양선충류 1

도표 Hygnstrom et al., 1994

두더지가 식물의 뿌리와 괴경을 먹기 때문에 식물에 해를 입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다른 설치류들이 비난 대상이다.
두더지는 매일 자기 체중의 70 ~ 100% 정도를 먹는데, 두더지의 식욕은 거의 한계가 없는 것 같다. 포획한 두더지를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 그들이 선호하는 먹이를 공급하는 한 매우 게걸스럽게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땅을 파는데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에너지기를 공급하기 위하여는 상당한 양의 먹이를 필요로 한다.

피해와 피해확인

두더지는 잔디나 정원에 있는 많은 해충들과 애벌레들을 제거한다. 그러나 땅을 파는 습성으로 인하여 잔디밭이나 공원의 형태를 변형시키며 꽃밭을 파괴하고 화초의 뿌리를 절단하며 작은 정원에서 혼란을 야기시킨다. 두더지는 화산모양의 흙무더기를 만드는데 이 흙무더기는 주로 흙덩어리로 만들어 진다. 두더지 흙무더기는 깊은 터널에서 밀려 나오며 큰것은 60cm까지 되는 것도 있다. 두더지 흙더미로 특정 지역의 두더지 개체수를 확인 할 수는 없다. 지표면에 가까이 난 터널 또는 융기된 흙은 두더지 활동의 증거가 된다.

수목피해 - 두더지가 만들어 놓은 터널은 들쥐나 나무 뿌리를 먹고 사는 다른 동물들의 이동로가 된다. 또한 두더지들은 가끔은 먹이를 찿으려고 잔디밭 표면을 심하게 파 헤집어 놓고 주먹만한 흙무더기를 만들어 놓곤한다. 드믈게는 정원에 있는 화초의 뿌리나 괴경을 먹기도 한다. 먹이를 찿는 활동과 터널은 식물 뿌리의 건조를 초래 한다.

잔디 피해 - 잔디 뿌리를 파헤쳐 놓으면 해당 부위의 잔디는 말라 죽게 되며 추가적 보수가 필요하다 .

구조적인 피해 - 논둑같은 곳은 두더지 굴을 통하여 물이 빠지면서, 침식되어 결국 논둑이 붕괴되기도 한다.
농업피해 - 비닐하우스 같은 곳은 토양내의 풍부한 유기질로 인하여 각종 토양 생물이 풍부 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두더지의 먹이 공급처가 된다. 특히 토마도 비닐하우스 같은 곳은 두더지가 땅굴을 파고 다니게 되면 뿌리가 노출되면서 토마도 포기가 말라 죽는다 . 
 
뿌리채소에 피해 유발

두더지의 특징....
체중 140그램 두더지 한마리가 연간 20kg 이상의 곤충이나 벌레를 잡아 먹는다.
땅굴 파는 속도 시간당 5.5m. 기존 땅굴을 통해서는 분당 약 25미터 이동 가능
유사한 크기의 다른 동물에 비하여 2배이상의 혈액양, 2배 이상의 헤모글로빈양 >> 산소농도가 낮은 땅속에서 호흡하기에 적당하도록 적응됨

참고자료
1. Scott E. Hygnstrom, Robert M. Timm, Gary E. Larson, PREVENTION AND CONTROL OF WILDLIFE DAMAGE(1994)
2. Cooperative Extension Division Institute of Agriculture and Natural Resources University of Nebraska -Lincoln
3.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Animal and Plant Health Inspection Service Animal Damage Control
4. Great Plains Agricultural Council Wildlife Committee
[출처] 두더지의 먹이습성, 피해확인 |작성자 가디언

난중일기에 기록된 무우 파종 시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둔전에서 무를 파종했다는 이야기가 2번 나옵니다. 첫번째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수군 승리하던 시기로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을때인 갑오년(1594년) 양력 7월 24일이고, 두번째는 모함과 질투로 옥살이하고 풀려나 권율장군 아래서 백의종군하고 있던 정유년(1997년) 8월7일에 파종을 지시했다고 나옵니다. 백의종군 하던 시절에도 둔전에 무우농사 챙기시던 장군님의 세심함이 돋보입니다.

파종 날짜를 살펴보면, 첫번째 기사는 양력 7월24일이고, 두번째 기사의 8월6일 입추에 침종했다고 합니다. 침종은 무우씨를 물에 불려 발아율을 높이는 방법인데 보통 다음날 파종하기 때문에 그날 물에 담궜다는 뜻인지 아니면 전날 불린것을 그날 파종했다는 뜻인지 정확치 않지만 어느쪽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요즘보다 좀 많이 일찍 시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몇년간 텃밭에서 무농약 재배를 해보니 저녁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8월 하순에 심어도 무더운 날씨에 벌레가 생겨서 망하기 쉽상인데, 7월말이나 8월초라면 더더욱 힘들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그렇게 일찍 심을수 있는 무우라면 지금 재배하는 것들 보다는 병충해에 강한 품종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무우 재배의 목적은 아마도 땅속에 움저장해 두고 겨우내 먹거나, 김장이나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씨앗은 당연히 재래종일텐데 그 당시 어떤것이 있었는지 자료조사도 해보고, 상상력을 발휘해보아야 겠습니다. 아마도 재래종인 진주대평무 비슷한 것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갑오년 6월 (1594년 음력 6월)
6월 5일 (임자) 맑다. [양력 7월 22일]
충청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사도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가 함께 와서 활을 쏘았다. 밤 열 시쯤에 급창(관청의 심부름하는 종) 김산(金山)과 그 처자 등 세 명이 유행병으로 죽었다. 세 해나 눈앞에 두고 미덥게 부리던 사람인데, 하루 저녁에 죽어가다니, 참으로 슬프다. 무우밭을 갈았다. 송희립․낙안군수․흥양현감․보성군수가 군량을 독촉할 일로 나갔다. (해석 -> 파종 2-3일전에 밭갈기, 퇴비 넣기?)
원문: 初五日壬子。晴。忠淸水使,蛇渡,呂島,鹿島並來射帿。○夜二更。及唱金山及妻子並三名。癘疫死。三年眼前信使者一夕死去。可愕。○是日。耕菁(경청)。○宋希立以樂安,興陽,寶城軍粮督促事。出去。

6월 6일 (계축) 맑다. [양력 7월 23일]
충청수사․여도만호와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우후가 와서 봤다. 소나기가 왔다.

6월 7일 (갑인) 맑다. [양력 7월 24일]
충청수사․첨사 배경남(裵慶男)이 와서 이야기했다. 남해군관과 색리 등의 죄를 처벌했다. 송덕일(宋德馹)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임금의 분부(有旨)가 들어온다고 했다. 오늘 무우씨 두 되 다섯 홉을 부침했다.

원문: 初七日甲寅。晴。忠淸水使及裵僉使來話。○决南海軍官及色吏等罪。○宋德馹還來言。有旨入來云。 ○是日。種菁(종청)


두번째, 정유년 6월 (1597년 음력 6월)
6월 24일 (계미) 이 날은 입추이다. [양력 8월 6일]
새벽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골짜기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 침에 수사 권언경(權彦卿)의 종 세공(世功)․종 감손(甘孫)이 와 서 무우밭에 관한 일을 아뢰었다. 무우밭을 갈고 씨부침하는 일의 감독관으로 이원룡(李元龍)․이희남(李喜男)․정상명(鄭翔 溟)․문임수(文林守) 등을 정하여 보냈다. 생원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 합천군수가 조언형(曺彦亨)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더위가 찌는 듯했다. (해석 -> 파종 1-2일전에 밭갈기, 퇴비 넣기?)

6월 25일 (갑신) 맑다. [양력 8월 7일]
다시 무우씨를 부침하도록 시켰다. 아침을 먹기 전에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와서 보고는 해전에 관한 일을 많이 말하고, 또 원수가 오늘 내일 진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군사를 토론 하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저녁에 종 경(京)이 한 산도에서 돌아왔다.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들었다. 놀라워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놀랍고도 애석 하며 놀라와 탄식했다. 한 놈의 적도 잡지 못하고 먼저 두 장 수를 잃었으니 통탄하고 한탄할 일이다. 거제도 사람을 보내어 미역을 실어왔다.


7월 18일 (정유) 맑다. [양력 8월 30일]
새벽에 이덕필(李德弼)․변홍달(卞弘達)이 전하여 말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몰래 기습공격을 받아 통제사 원균(元 均)․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충청수사(최호) 및 여러 장수 와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고, 수군이 대패했다.”고 했다. 듣자하니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원수(권율)가 와서 말하되, “일이 이 지경으로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오전 열 시가 되어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직접 연해안 지방으로 가서 보고 듣고 난 뒤에 이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말하니, 원수가 기뻐하여 마지 않았다. 나는 송대립(宋大立)․류황(柳滉)․윤선각(尹先覺)․ 방응원(方應元)․ 현응진(玄應辰)․ 림영립(林英立)․ 이원룡(李元龍)․ 이희남(李喜男)․ 홍우공(洪禹功)과 함께 길을 떠나 삼가현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새로 부임하여 나를 기다렸다. 한치겸(韓致謙) 도 왔다.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연애십결 (戀愛十訣) 1935

출처: http://love.seoul.go.kr/asp/articleView.asp?intSeq=4261


1935년이면 일본 식민지 시절인데.... 지금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올바른 연애에 대한 조언이다.

연애십결 (戀愛十訣)

一. 이성과의 사이에 사랑이 싹틀때는 조곰도 주저하지 말고 부모에게 통사정을 할일
二. 알게된 최초의 이성을 연애의 대상으로 생각하여서는 안될 일
三. 감정(感情)에 흐르지 말고 이성(理性)에 눈떠야 할 일
四. 상대자의 성격(性格)을 경솔(輕率)히 판단(判斷)하지 말 일
五. 연애도중에 상대자에게서 절망(絶望)을 느낄때는 칼같은 마음을 먹고 단념할 일
六. 연애는 동정(同情)에서부터가 아니고 존경(尊敬)에서부터임을 인식할 일
七. 연애의 수난(受難)은 상호(相互)의 책임인 것을 깨다를 일
八. 어데까지든 신중(愼重) - 유히적(遊戱的)인 연애는 절대로 피할 일
九. 결혼기피(結婚忌避)와 처녀시대의 꿈속에 취하려하지말고 어데까지나 엄격한 연애를 생각할 일
十. 연애는 인생최대의 사업(事業)도 아닌 동시에 무상(無上)의 향락(享樂)도 아님을 깨다를 일
출처: 1935년 신가정(新家政) 12월호 104페이지

이번 주말 할일(9월15일)

9월 15일 (토요일)
가을 상추(로메인, 적치마) 모종심기
달래파 종구 심기

9월16일 (일요일)
돌산갓 파종
월동시금치 파종 완료

대파씨 파종은 담주에...

한국화로 그린 예수의 생애 30장면 - 운보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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